[공학저널 강영호 기자] 토목공학의 꽃으로 평가받으며 국내 토목 산업에 한 획을 그은 교량이 있다. 순수 국산 기술력으로 탄생해 화제를 이순신대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광양항과 여수 국가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이순신대교는 총길이 2260m의 현수교(懸垂橋)로 지난 2013년 2월 개통됐다.
공사 규모뿐만 아니라 건설 과정에서 각종 첨단 공법을 적용한 이순신대교는 대한민국의 뛰어난 토목 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한 구조물로 손꼽힌다. 대한민국 사장교의 시작이 서해대교였다면 대한민국 현수교의 시작은 이순신대교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과 바다 사이의 평행선’, ‘철로 만든 하프’라고 불리는 현수교의 최대 장점은 교각이 많이 필요 없어 경제적으로 초장대 교량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늘어지게 친 케이블이 본체를 구성하는 교량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골든게이트교를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 국내에는 남해대교와 광안대교 여종대교와 소록대교 등이 있다.
이순신대교가 지어질 당시 현수교 시공은 선진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가능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설계‧시공 난이도가 당시 국내의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시공됐던 4개의 현수교 역시 모두 외국의 기술과 장비, 기술진에 의존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현수교 가설은 최첨단 토목기술과 고차원적인 구조역학이 만든 하이테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당시 설계에서부터 시공‧유지보수까지 모든 분야를 자국 기술로 소화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덴마크 등 5개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순신대교는 설계에서부터 장비, 자재, 기술진에 이르기까지 현수교와 관련한 모든 분야를 국산화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6번째로 현수교 기술 완전 자립국이 됐다.
특히 고난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해상 특수교량 부문이기에 더욱 주목받았다. 대림산업 기술진들이 보유하고 있는 고도의 기술력과 발상의 전환으로 공사과정에서 각종 기록을 갈아 치우며 국내 해상특수교량 건설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이순신대교가 탄생하기 전까지 대림산업은 가설 작업, 특허 출원, 논문발표 등의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주탑과 앵커리지(anchorage)에 케이블을 가설하는 작업은 현수교 시공 과정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정으로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앵커리지는 교대의 양 옆에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현수 케이블의 끝이 이곳에 부착된다.
특히 대부분의 작업이 공중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케이블 설치 전문장비와 전문 기술자가 도맡아 왔다. 그리고 그간 국내에서는 케이블 가설장비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일본에서 주로 임대해서 사용해왔다.
이에 대림산업은 순수 국내 기술로 케이블 가설장비를 직접 개발했으며, 이를 활용해 케이블을 성공적으로 가설했다. 이를 통해 대림산업은 이순신대교에서 약 200억원정도의 기술 수입 대체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한 현수교는 공사 기간 중에 공정별, 위치별로 하중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안정성 검토를 위한 시공 단계별 구조계산‧해석이 필수적이다. 이순신대교에는 대림산업의 박사 3명과 구조기술사 4명 등 국내 고급 기술인력들이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현장을 지휘하며 구조 계산을 진행했다.
이렇게 탄생한 이순신대교는 왕복 4차로, 총 다리 길이는 2260m에 이르며, 특히 주경간장 길이는 무려 1545m에 달해 일본의 아카시대교 1991m 등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길다.
양쪽 주탑의 높이는 서울 남산(262m), 63빌딩(249m)보다 높은 해발 270m로, 현존하는 현수교 콘크리트 주탑 중 가장 높은 덴마크의 그레이트 벨트교(해발 254m)보다 높은 세계 최고 높이로 시공됐다. 바다에서 상판까지의 높이는 최대 85m, 평균 71m로 아파트 20층 높이에 이르러 다리 밑으로 초대형 선박 운항이 가능하다.
최근 세계적인 해상 특수교량 건설 회사들의 공통된 화두는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 즉 주경간장을 길게 늘일 수 있는 기술력 확보에 집중되고 있다. 바다의 수심이 깊거나 대형화되고 있는 선박의 통행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주경간장을 길게 늘이는 것이 대안이기 때문이다.
교각이 많을수록 바다 생태계와 미관상으로 좋지 않다는 평가와 함께 무엇보다도 시공비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로 인해 세계적으로 장대교량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에 주경간장의 길이는 해상 특수교량 기술력을 평가하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다. 더불어 현수교는 전 세계적으로 시공 사례가 드물며 투입비용 등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건설과정에서부터 이목을 끌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초장대 현수교 건설은 토목분야의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정의하고 있다. 세계 4위 규모의 초장대 현수교인 이순신대교를 국내 기술진들이 성공적으로 건설함으로써 소수의 선진 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는 해외 해상 특수교량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술적인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것.
대림산업 관계자는 “이순신대교는 기술부터 자재까지 순수 국산자본이 투입된 교량으로 현수교 기술을 자립한 작품으로 평가된다”면서 “우리 기술력은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시대의 문을 열었고, 앞으로도 대림산업의 핵심 성장의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